'희망의 6골' 쏘아올린 여자수구팀…'뛰고 싶고, 더 멀리 날고 싶어요'

김병윤 / 기사승인 : 2019-07-29 10:25:55
  • -
  • +
  • 인쇄
▲ 지난 18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 대 캐나다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뉴시스]


아~~ 꿈이었나. 신기루였나. 천둥 같던 함성 소리는 어디로 갔나. 귓가를 때리던 박수 소리는 간 곳이 없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건가. 꿈이라면 깨지를 마라. 간절히 바랐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지나간 현실이었네. 뒤 돌아보니 모두가 행복이었네. 힘들었던 훈련은 희망의 싹이었네. 64골을 내줬어도 부끄럽지 않았네. 30골을 내주고 1골을 빼냈을 때 세상을 다 얻었네. 모든 경기를 다 졌어도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네. 우리의 위대한 도전은 성공을 했다네. 경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모두 울었네. 우리가 자랑스러워 스스로 목 놓아 울었다네. 우리만 울었던 게 아니라네. 우리의 선생님들도 울었다네. 부모님들도 울고 친구들과 관중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네. 우리는 어리지만 대한국민에게 꿈을 줬다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네. 빛고을 광주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쏘아 준 대한민국 여자수구국가대표 선수들의 감동 스토리이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지난 28일 막을 내렸다. 193개국 7266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 대회에서 관심을 크게 끌었던 팀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여자수구국가대표 팀이다. 한국여자수구대표 팀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었다. 한국에는 여자수구 팀이 없다. 당연히 선수도 없다. 어쩌란 말인가. 급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 했다. 지난 5월 급히 선수를 모았다. 수영연맹에 등록 된 경영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집공고를 냈다. 38명이 응시했다. 13명을 뽑았다. 중학생 2명. 고등학생 9명. 대학생 1명. 일반선수 1명.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막내 조예림은 2005년생. 불과 14살의 어린 중학생이었다. 대회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훈련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경기규칙도 몰랐다. 공을 한 번 잡아본 적도 없었다. 진만근 코치는 할 말을 잃었다. 웃음마저도 안 나왔다. 현실이 캄캄했다. 앞날은 더 암울했다. 주사위는 던져 졌다. 돌아설 수 없었다. 물러설 수도 없었다. 작전을 세울 수도 없었다.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레 선수들을 돌봤다. 규칙을 알려줬다. 수구의 기본을 가르쳤다. 선수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하나라도 배우려고 훈련에 집중했다. 훈련장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동료애로 똘똘 뭉쳤다. 희망이 보였다. 목표를 정했다. 승리는 포기했다. 대회기간 동안 1골만 넣자고 했다. 선수들은 오기가 생겼다. 우리는 1골을 위해 모인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내 어린 선수들이 사고를 쳤다. 3경기에서 6골을 터뜨리며 경기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진 코치는 연습상대 팀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남자고교 팀을 찾아가 부탁했다. 동료 지도자들이 도와줬다. 전남체육고와 3번. 경기체육고와 7번 경기를 했다. 연습경기를 하며 경험을 쌓았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잠이 안 왔다. 대진운도 안 좋았다. 여자수구의 강호 헝가리·러시아·캐나다와 한 조를 이뤘다. 어차피 승리는 포기한 것.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심정이었다.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예선 첫 경기에서 세계최강 헝가리에 0대64로 졌다. 국제대회 최다점수 차이 패배 기록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이 헝가리에 0대9로 졌던 전철을 밟았다. 이 기록도 월드컵 축구 역대 최다점수 패배로 남아있다. 65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헝가리는 왜 이리 한국스포츠에 모진 걸까. 원망도 하고 싶었다. 첫 패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두 번째 상대는 세계랭킹 2위 러시아였다. 선수들을 다독였다. 러시아전도 즐기면서 하자고. 선수들도 호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뜻을 이뤘다. 경기종료 4분을 남겨놓은 4쿼터에 경다슬이 러시아 골문을 활짝 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첫 골이 세계강호 러시아전에서 터졌다. 여자수구대표 팀의 목표가 이뤄졌다. 한국여자수구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경다슬의 첫 골은 해외뉴스에도 화제가 됐다. 0대27이 1대27로 바뀌자 경기장은 함성과 박수와 기쁨의 눈물로 어우러졌다. 결과는 1대30 패배. 졌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첫 골을 터뜨린 수구대표 팀에게는 거칠 게 없었다. 캐나다와의 3차전에서는 2골을 터뜨렸다. 결과는 2대22. 실점은 줄이고 득점은 늘렸다. 대표 팀은 남아공과의 순위결정전에서 무려 3골을 넣어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3대26 패배였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여자수구대표 선수들은 7일간의 열전을 마친 뒤 아쉬움에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여린 소녀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 눈물에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가 해냈다는 자긍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시 수구를 할 수 없다는 서러움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여자수구대표 선수들의 선전은 무모한 도전이라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여자수구대표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소속 팀에 복귀한다. 팀에서는 수구선수가 아니다. 각자의 주 종목인 경영 선수로 뛰게 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수구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진만근 코치는 "대표선수들 대부분이 여건만 되면 주 종목을 수구로 바꾸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선수들은 정식 수구 팀이 안 되면 클럽 팀으로라도 수구를 계속 하고 싶어 한다. 다행히 대표선수들의 이런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창훈 한국선수단장이 연말에 선수들을 다시 모아 훈련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체육회나 수영연맹의 지원이 안 되면 사비로 훈련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현재 남자수구대표 팀은 체육회 지원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여자수구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앞으로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수영연맹은 여자수구 팀 창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선수가 없다. 남자 팀의 경우에도 2019년 등록선수가 67명밖에 안 된다. 여자등록 선수는 한명도 없다. 팀을 창단한다 해도 훈련할 상대가 없다. 훈련장 사용료마저도 감당하기 버겁다. 연맹의 재정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수영연맹은 현재 대한체육회의 관리를 받는 사고단체로 전락해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여자수구 팀의 선전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끝났다. 여자수구대표 팀의 각본 없는 드라마도 막을 내렸다.


무모한 도전도 아름답게 마무리 됐다. 65년 전 한국축구대표 팀은 헝가리에 대패했다. 그때의 패배를 자양분 삼아 48년 뒤인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2019년 7월 한국여자수구대표 팀은 헝가리에 0대64로 졌다. 48년 뒤에 한국여자수구대표 팀이 4강을 넘어 우승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U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upinp.kr

 

[저작권자ⓒ 유피아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